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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움직이는 글로벌패션브랜드 '아디다스(ADIDAS) 이야기”

관리자 0 1,609 2021.04.30 10:55

세상을 움직이는 글로벌패션브랜드 '아디다스(ADIDAS) 이야기”.

 수석부회장 법학박사 이재길

 

 

 

 

최근 들어 코로나사태의 확산세가 조금은 진정되면서 미루어왔던 여러 명의 디자이너와 소기업들에 대한 브랜드 및 IP컨설팅을 대면으로 

현장에서 진행하게 되었었다. 여전히 우리 업계나 신진패션디자이너들을 만나면 드는 안타까운 점은 브랜드를 근본적인 기반으로 하는 

패션관련사업을 하려는 사람들이 자신만의 확실한 독점브랜드 즉 상표권도 하나 없이 무작정 사업을 무모하게 시작하고 중단하고 새로 

고치기를 반복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여러 차례 이야기 하였지만 단순히 통칭하여 브랜드라고 하면 등록된 상표권의 독점적 권리를 포함하는 상표부터 등록여부 상관없이 그냥 

자신이 쓰고 싶은 상표나 로고를 일방적으로 만들어 쓰고 있는 것까지를 모두 포함하는 것이라 말했었다. 아직도 패션기업과 많은 

패션디자이너들이 국내외 온오프라인시장에서 독점적 권리를 행사하기 위한 자신의 상표권 확보가 필수가 아닌 선택적 요소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듯하여 안타깝기만 할뿐이다.

 

우리 섬유패션산업에서 브랜드를 빼고 제품과 물성 또는 품질만을 가지고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사업의 지속성이 보장되기는 하는지를 

고려해보면 결코 지금의 상표권 문제는 가벼운 것이 아님을 다들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해서 이번 편부터 몇 편에 걸쳐 세상을 움직이는 글로벌패션브랜드로 성장한 그들의 브랜드이야기를 나름 정리하여 소개해 볼까 한다. 모쪼록 기업이든 패션디자이너든 자신만의 

랜드스토리를 만들어 나가기를 기대하고 소망해 본다.

 

글로벌패션브랜드로 우뚝 선 '아디다스(AIDIDAS)' 이야기

1900년 독일 뉘른베르크 근교의 작은 시골마을인 헤르초게나우라흐에는 한 명의 평범한 구두수선공이자 신발 공장의 봉제기술자가 살고 

있었다. 그는 세탁소를 운영하는 아내와 이제 갓 태어난 둘째 아들까지 두 명의 아들을 두고 있었고, 이 수선공의 둘째아들인 아돌프 다슬러(Adolph Dassler)는 백년이 넘게 흐른 오늘날 스포츠용 신발과 운동복, 운동용품 등 다양한 패션분야에서 지구상에서 가장 유명하고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스포츠 및 패션브랜드로 인정받고 패션으로 세상을 움직이고 있는 아디다스(ADIDAS)”브랜드신화를 만들게 된다.

 

당시 아돌프의 애칭은 아디(Adi)”였으며 1900년도에 태어난 아디는 경제적으로 상당히 어려웠던 제1차 세계대전 이전 독일에서 유년시절과 어린 시절을 보내며 어렵게 성장하게 된다. 가족의 생계유지를 위해 어려서부터 가내수공업의 형태로 실내용 슬리퍼를 만드는 일과 

섬유제품을 다루는 일을 온가족들과 함께 해왔으며, 이런 분위기속에서 자연스럽게 아돌프는 섬유가공과 신발제조 및 세탁 등의 다양한 

제조방법과 기술들을 익히고 친숙해 지게 된다.

 

당시 독일의 신발산업이 하향세에 접어 든 탓에 아버지는 아들이 가난한 신발수선기술자 보다는 제빵을 하는 직업을 가졌으면 하고 바랬지만 누구보다 건강하고 열정적인 운동선수이자 축구선수이기도 했던 다슬러는 불과 20세였던 1920년에 몇 번만 신으면 떨어져 버리는 운동화 

대신 오래 쓸 수 있는 자신만의 튼튼한 트레이닝용 운동화를 만들고 싶다는 욕구와 자기만의 생각에 처음으로 운동화 만드는 일을 시작하게 된다.

 

얼마 뒤 세계대전에 참전한 후 집으로 돌아온 형 루돌프 다슬러(Rudilf Dassler)는 아돌프 다슬러의 신발 제작하는 일과 사업에 동참을 하게 되었고, 둘은 1924년에 의기투합하여 다슬러 형제 신발공장(Gebruder Dassler Schuhfabrik)을 설립하게 된다. 훗날 이 공장이 1949년에 

아디다스로 이름을 변경하게 되는 전신이 된다. 이 공장은 초기 그들의 가족과 몇몇 사람들이 직접 수작업으로 만드는 가내수공업형태의 

공장으로 소규모로만 운영되는 정도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슬러의 운동화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제품이며 좋은 장비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평가와 평판으로 주변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특히 그는 선수들이 사용하기 전에 손수 제품의 테스트를 했던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는 가장 좋은 제품만을 선수들에게 

제공하겠다는 그의 소신이자 생각에서 비롯되었고 지금도 아디다스 브랜드의 중심이 되는 근본철학으로 자리 잡고 있다.

 

다슬러 형제의 러닝화가 처음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1928년 제9회 암스테르담 올림픽이었으며, 당시 여성 러너인 리나 라드케가 그들의 스파이크화를 신고 여자 중장거리(8백미터) 종목에서 그동안의 기록을 갈아치우며 금메달을 차지하면서 부터였다. 이후 1932년 

LA올림픽에서 아서 요나스라는 선수가 그들의 스파이크화를 신고 100미터종목에서 동메달을 차지하면서 그들의 스파이크 러닝화는 

크게 이름을 알리고 전 세계 많은 운동선수들이 원하는 제품이 되게 된다.

 

그 후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다슬러는 지시 오언스라는 선수에게 자신의 러닝화를 올림픽에서 사용해 줄 것을 정중히 요청했고, 제시 

오언스는 이 스파이크화를 신고 4개의 육상 종목에서 금메달을 차지해 4관왕으로 최고의 선수가 된다. 이때부터 많은 육상선수들이 그들의 운동화를 최고로 원했고, 1939년까지 그들은 매년 20만 켤레 이상의 운동화를 판매하게 된다.

 

특히, 아디다스의 프레데터 축구화는 최초로 주물로 만들어진 고무 징이 달린 축구화를 생산하였고 아디다스의 상징이 된 3선 무늬가 이때 

적용되었다. 독일축구 대표 팀은 아디다스의 새 축구화를 신고 1954년 월드컵우승을 거머쥐게 되고 스크루방식의 징이 박힌 이 신발은 어떤 상황에서도 미끄러짐이 일어나지 않게 해주어 선수들의 기술 향상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이처럼 승승장구하던 형제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심한 갈등으로 인해 힘들어 하게 되고 급기야 1947년 그들은 서로 각자의 노선과 다른 길을 걷기로 합의하게 된다. 형인 루돌프 다슬러는 그 다음해인 1948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puma schhfabrik rudolf dassler”라는 

신발회사를 세웠고 이는 오늘날 푸마(puma)”의 전신이 되었다. 1949년 아돌프 다슬러는 함께 있던 50명 정도의 직원들과 자신의 애칭과 

이름을 이용해 아디다스(아디(Adi)와 다슬러(Dassler)의 합성어)”라고 회사의 이름을 바꾸고 정식으로 상표권을 등록하여 새롭게 출발하게 되었고 이것이 오늘날 세계 최고의 스포츠 글로벌브랜드 아디다스가 된 것이다.

  

아디다스의 사업은 다양한 제품과 소재의 개발을 통해 지속 발전했다. 1984년 창업자인 아돌프 다슬러가 사망하면서 그의 부인이 경영권을 승계 받았지만 불과 6년 뒤인 1990년에 부인마저 사망하였고, 뒤이어 사업을 승계 받은 아들 또한 3년 뒤인 1993년에 사망하면서 

아디다스라는 브랜드가 시장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기업인이던 베르나르 타피에가 쓰러져가는 아디다스의 

주식을 대부분 인수하고 공격적인 제품과 소재개발홍보마케팅을 새롭게 펼치면서 아디다스를 다시 혁신적으로 부활시켜 최고의 

글로벌패션브랜드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브랜드나 기업의 운영과정은 항상 순탄할 수만은 없는 것이었다. 아디다스도 1960년대 중반부터 스포츠 의류, 1963년부터 공을 생산했는데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텔스타가 공식구로 사용된 이후 현재 거의 모든 월드컵 경기에서 아디다스가 생산한 축구공이 공인구로 쓰이게 

되었다. 하지만 지나치게 스포츠 선수들을 위한 제품만 생산한다는 지적과 일반인들에게 외면을 받아 1980년대부터는 하락세를 걷고 

힘든시기도 보내야 했다.

 

1990년대 새로운 경영인으로 다시 사업이 회복되면서 1997년 동계 스포츠용품 제조사인 살로몬을 인수하여 회사명을 아디다스-살로몬” 

기업으로 변경했다가 2005년 살로몬을 핀란드의 아머 스포츠에 매각하면서 원명이던 아디다스를 다시 회복했고 2006년 리복을 인수하고 2011년에는 파이브텐과 합병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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